[인터뷰] 버추얼랩, 맷스큐 플랫폼으로 소재 R&D 진입 장벽 낮춘다

 

*본 글은 한국공학교육학회 2021년 3월호 학회지 ‘인재니움’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http://eeic.or.kr/www/ingenium/eduList.do?type=list2

 

 

 

 

 

Q. 우선 회사 소개를 간단히 요청 드립니다.

 

버추얼랩(Virtual Lab)은 2016년 설립된 소재 시뮬레이션 플랫폼 기업입니다. 물리·화학·소재 전공자들로 회사를 구성해 연구자들이 손쉽게 소재를 연구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힘써 왔습니다. 구성원들이 소재 시뮬레이션 이해도와 기존 R&D 노하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IT 기술과 기초과학 지식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버추얼랩은 2017년 소재 시뮬레이션 플랫폼 ‘머터리얼스 스퀘어(Materials Square)’를 개발했습니다. 아마존, 구글의 플랫폼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간편한 IT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서 착안했는데요. 클라우드 기반의 가상 공간에 실험실을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실험실에 적용할 좋은 시뮬레이션 방법론을 찾아 수요자에게 잘 배달(delivery)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연구에 컴퓨터를 쓰면 좋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처럼 난해한 방정식을 컴퓨터는 사람의 손으로 푸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으니까요. 실험할 후보 물질 양을 기존의 수백 분의 일 수준으로 줄일 수 있죠. 예를 들어 후보군 천 개 중에 990개의 실험군을 버리고 실제로 해야 할 단 10개의 우선순위 실험 만을 지정해 주는 것입니다.

 

클라우드는 사용한 만큼만 지불하는 과금 정책을 쓰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효율적입니다. 보안 역시 클라우드가 더 안전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죠. 버추얼랩 플랫폼을 사용하면 소재 연구자들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가질 수 있습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나노 구조 등을 연구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고성능 컴퓨팅(HPC)의 탄생으로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컴퓨터가 수식을 계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때 시뮬레이션은 결과로서의 완벽한 정답보다는 실험 이전에도 예측 가능한 오답을 걸러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연구자는 자기 경험과 지식에 기반해 실험 계획을 세운 뒤 컴퓨터에게 명령하면 됩니다.

 

다만 시뮬레이션 방식을 실제 연구에 도입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우선 고가의 고성능 서버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공학 연구에서는 선별되는 연구자의 지식과 경험도 실험 요인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진입장벽을 넘어서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도 상대적으로 부족했고요.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면 이상적인 연구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입률은 적은 편이었습니다.

 

버추얼랩은 아마존 웹 클라우드 서비스(AWS)를 기반으로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고성능 서버나 유료 소프트웨어 없이도 시뮬레이션, 기계학습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과거였다면 이런 플랫폼 회사를 차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클라우드를 벤치마킹하면서 시뮬레이션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들을 수요자에게 잘 전달해 줄 수 있게 됐죠.

 

Q. 어떤 동기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비전공자라면 시뮬레이션 연구가 생소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뮬레이션이란 현실 문제를 가상 세계에서 다루어 보는 방법론인데요. 이 가상 세계 프로그램에는 현실과 동일한 물리학 법칙(슈뢰딩거 방정식 등)을 적용합니다. 저렴한 비용과 빠른 속도로 컴퓨터로 문제를 풀어볼 수 있죠. 실제로 자동차, 다리 설계부터 우주의 탄생 원리까지 다양한 연구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재 분야의 경우 기존에는 무수한 경우의 수들을 직접 실험으로 검증해야만 했는데요. 보통 소재의 물성은 소재를 이루는 원자의 종류와 원자들의 배치에 따라 결정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소재를 개발하려면 다양한 원소와 구조에 대해 수백 가지 이상의 후보군을 만들어 각 후보에 대한 실험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변수를 고려해보면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현대의 산업 공정은 대부분 나노스케일 단위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나노스케일은 10억 분의 1미터를 다루는 매우 정밀한 프로세스를 뜻합니다. 정밀한 과정만큼 매 실험마다 매우 많은 비용이 발생하죠. 소재 R&D는 첨단을 달리는데, 실험이라는 형식은 미래 산업 수요를 모두 소화하기엔 부족했습니다.

 

소재 분야에서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주목받는 건 이런 학술적 특성도 기인합니다. 일단 육안으로 볼 수 없던 원자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시각화할 수 있죠. 두 개의 상 사이의 경계, 즉 계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던 계면 역시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계면에서 일어나는 반응 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소재 시뮬레이션에는 제일원리 계산(DFT), 분자동역학(MD), 칼파드(Calphad) 등 소재에 따라 적절한 모델링 방법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일원리나 분자동역학은 기계적 성질, 열역학적 성질, 광학적 성질, 전자기적 성질 등을 분자 혹은 원자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칼파드는 각각의 원자가 어떤 조성에서 가장 ‘안정’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요.

 

시뮬레이션은 실제로 실험해야 할 후보군 자체를 줄여주는 것이지 실험을 대체할 수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실험 시행 전에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양대학교에서 시뮬레이션을 전공하고 있었는데요. 리눅스 터미널 환경 등의 IT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는 처음 시뮬레이션 연구를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가 IT 진입장벽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사용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직접 좋은 연구를 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Q. 다양한 공학 연구에 쓰이고 있는 플랫폼 현황과 향후 플랫폼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요?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시뮬레이션 적용은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최소 년 단위로 진행되는 재료 연구에는 많은 비용이 소모됩니다. 물론 컴퓨터 리소스를 쓰는 것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행을 명령한 뒤 연구자는 다른 연구를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죠. 복잡한 계산연구에 시뮬레이션을 적용하면 동일한 인건비로 n 개의 실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규모가 작아 시뮬레이션을 직접 도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요. 부설 R&D 연구소가 있는 기업 자체도 작죠. 이럴 때도 별도의 시뮬레이션 인력을 새로 채용하는 것보다 기존 실험 연구자들에게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플랫폼을 사용하면 시뮬레이션 연구에 필요한 초기 비용(장비 구입, 인건비) 등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에서 쓰이는 내용들은 다른 시뮬레이션 연구들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최근 기업들의 시뮬레이션 스크리닝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추세입니다.

 

한편 기계학습을 시뮬레이션에 도입하는 동향도 보입니다. 기계학습의 핵심은 데이터를 형성하는 일입니다. 기계학습을 활용하려면 수천, 수만 개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컴퓨터에게 명령하면 기계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역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실험을 통해 백 개의 데이터를 만드는 데도 단순하게 백일이 소모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시뮬레이션의 연구 속도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연구소나 대학교 연구실에서는 이미 저마다 다양한 소재 시뮬레이션 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툴을 엔진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엔진을 개발하는 일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료 소프트웨어들은 사용료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도입의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오픈 소스들도 많습니다. 다만 이런 오픈 소스들은 사용자의 편의성이 덜 고려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낮은 단점이 있습니다.

 

Materials Square 플랫폼의 경우 검증된 오픈 소스들을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래픽 기반으로 잘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재의 구조를 모델링하거나 분석하는 기능들은 모두 무료로 제공하되, 컴퓨팅 서버를 사용하였을 때 서버 사용료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기존의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회사와는 다른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죠.

 

특히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주로 시뮬레이션을 다룰 줄 아는 연구원을 타겟으로 했다면, 저희는 시뮬레이션 연구자뿐만 아니라 실험 연구자까지 타겟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강점을 어필해 신규 사용자를 유입하는 중입니다.

 

Q 버추얼랩에서 개발해서 운영 중인 플랫폼은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나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컴퓨팅 리소스는 매우 고가입니다. 흔히 슈퍼컴퓨터라고 하지요? 일반인이나 중소기업 등이 슈퍼 컴퓨팅 환경을 구현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대학, 대기업, 국가 연구소 정도가 되어야 가능했죠. 버추얼랩은 플랫폼 하나로 고성능 서버, 전문가, 고가의 소프트웨어라는 이 세 가지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습니다. 학부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든지 노트북만으로도 소재 연구를 진행할 수 있죠.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 중입니다. 사용자 중에는 경쟁 연구에 시뮬레이션이 적용된 걸 보고 당사 서비스를 처음 접한 연구자가 있었는데요. 이 사용자는 버추얼랩 플랫폼을 연구에 사용했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자 교육도 진행했습니다. 사용자는 플랫폼을 통해 배터리의 부피 팽창이 커지지 않고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는지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관찰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현실적인 장벽을 낮춘 좋은 사례였습니다.

 

연장선으로 배터리, 디스플레이, 전지 등과 관련하여 기업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터리 분야에서 분리막을 고분자를 썼을 때를 시뮬레이션한 사례가 있는데요. 새로운 반도체 소재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 실험 후보군이 29개 정도로 시간은 6개월 정도, 비용은 1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으로 실제 실험할 후보군을 단 4개로 줄일 수 있었죠.

 

또한 당사가 별도로 런칭해 운영 중인 교육 플랫폼도 있습니다. ‘맷스큐 에듀(MatSQ Edu)’는 반도체, 촉매, 금속 등 소재 이슈에 관련된 강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론 강의뿐 아니라 실습을 포함하고 있는데, 학습자는 하나의 웹 화면에서 강의를 시청하는 동시에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공생들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실험 기회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시뮬레이션 분야에서는 학생들도 연구진만큼 실험을 설계하고 시행해 볼 수 있죠.

 

무엇보다 실험 연구자가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치 실험과 같은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좋은 데이터가 마련되어 있는지도 중요하죠. 그 부분에서 버추얼랩은 그 자체로 독자성을 지닌 기업입니다. IT 기술 기반의 플랫폼을 만들려면 전공 지식이 수반되어야 하는데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사 구성원들은 모두 물리학/화학/공학 등의 각 분야의 전문 석박사 구성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요자가 원하는 내용이나 서비스들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기획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Q 끝으로 버추얼랩의 사업 목표와 지향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소재 시뮬레이션이라는 특수한 분야와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소재나 재료라는 키워드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기존에 없었던 소재를 ‘발견’하는 것만이 신소재 연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기존의 재료들을 새롭게 배합하거나 일부러 결함을 만들어 지금까지 없던 특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신소재 연구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연구를 주도할 방법론으로서 시뮬레이션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죠.

 

현재 저희 플랫폼은 지금 약 4천 명 정도의 사용자가 가입해서 사용하고 계신데요. 서비스 자체가 글로벌 서비스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유입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는 전체 소재 분야 연구자의 1% 이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분야에 따라 시뮬레이션이 필요 없는 분야도 있지만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향후에는 전 세계 소재 연구자 10~20% 정도가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키워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플랫폼으로 수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좋은 방법론들을 공유할 수 있길 바랐던 초심을 위해서도 힘써 왔습니다. 3년 전 학회에서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시는 박사님이 시뮬레이션 도입을 검토하시다가 당사 플랫폼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하셨는데요. 단 한 번도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던 분이 이제는 시뮬레이션을 능숙하게 사용하십니다. 벌써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포함된 세 번째 논문을 출판하셨어요.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간의 노력들이 작년 말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점도 기쁩니다. 올 2월에는 DSC 인베스트먼트로 부터 pre-시리즈A 시리즈 첫 투자 유치에 성공해 사업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창업한 지 꼭 5년 만의 쾌거였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세계 최대 VC 엑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PnP)’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 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PnP의 제휴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기업과의 네트워크도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반도체 등의 무기소재에서 유기소재로 사업 분야를 확장해 나가는 단계에서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버추얼랩은 플랫폼 구축에 집중해 왔는데요. 향후에는 플랫폼 서비스 분야를 화학, 바이오 등으로 확장해 경쟁력을 키워갈 계획입니다.